그때는 왜 그랬을까? 7탄 — 한 반에 60명이 넘었던 콩나물 교실
요즘 학교 교실 사진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교실이 참 넓어졌구나.’
교실 자체가 커졌다기보다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수가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도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한 교실에 다 들어가서 공부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학교생활이었다.
시골 학교도 한 반에 60명이 넘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다. 한 학년에 반도 하나뿐이었다.
1반, 2반, 3반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학년 아이들이 모두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고, 그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면 책상이 앞에서부터 뒤까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많은 아이들을 선생님 한 분이 가르쳤고, 우리도 그것을 당연한 학교생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 시절의 교실을 두고 흔히 **‘콩나물 교실’**이라고 불렀다.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듯, 한 교실을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득 채우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한 분이 그 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보다 선생님이 더 대단했다는 생각도 든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60명이 넘는 아이들의 숙제를 확인하고 시험지를 나눠주고 걷고,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면서 수업까지 해야 했다.
출석을 부르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우리는 선생님 한 분을 바라보며 함께 국어를 배우고 산수를 풀고 책을 읽었다.
칠판 하나와 선생님 한 분, 그리고 교실을 가득 채운 아이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국민학교 교실의 모습이다.
내 학교에는 오전반·오후반은 없었다
학생 수가 많았던 당시 학교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했던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는 오전반·오후반이 없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함께 수업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국민학교 시절은 오전반과 오후반의 기억보다는 교실 안에 아이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던 모습에 더 가깝다.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도 도시와 농촌, 학교의 규모와 지역에 따라 학교생활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자리가 멀면 칠판도 멀었다
학생이 많으니 당연히 책상도 교실 뒤쪽까지 이어졌다.
앞자리에 앉으면 선생님과 칠판이 가까웠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칠판은 멀어졌다.
지금처럼 커다란 화면이나 개인용 태블릿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분필로 써주면 그것을 보고 공책에 받아 적었다.
교실 뒤쪽에 앉은 아이들도 똑같이 칠판을 바라보며 수업을 따라갔다.
그때는 그것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학교란 그런 곳인 줄 알았다.
이름보다 번호가 더 익숙할 때도 있었다
학생이 워낙 많다 보니 학교에서는 번호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출석번호가 있었고, 선생님이 번호를 부르면 대답하기도 했다.
시험지를 걷거나 무언가를 나눠줄 때도 번호와 줄이 중요했다.
한 교실에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하려면 질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줄을 맞춰 서고, 차례를 지키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때는 그런 생활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많은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학교문화였던 것 같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오히려 학생이 없어 걱정하는 학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교실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책상을 빼곡하게 놓아야 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었던 시절과 학생 수 감소를 걱정하는 지금.
불과 몇십 년 사이 학교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이 더 좋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어린 시절 너무나 당연하게 보았던 풍경이 이제는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교실 문을 열면 책상 사이사이로 아이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고, 쉬는 시간이 되면 그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떠들고 움직이던 시절.
한 반에 60명이 넘었던 콩나물 교실.
그곳이 우리가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고 웃고 떠들며 자랐던 교실이었다.
FAQ
Q. 콩나물 교실이란 무슨 뜻일까?
한 교실에 학생이 너무 많아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던 모습을 콩나물시루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Q. 예전에는 정말 한 반에 60명이 넘는 경우가 있었을까?
그런 학교들이 있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학생 수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역시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했다.
Q. 학생이 많으면 모두 오전반·오후반으로 수업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학생과 교실 수에 따라 오전반과 오후반을 운영했던 학교도 있었지만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는 오전·오후반이 없었다.
Q. 왜 당시에는 한 반에 학생이 그렇게 많았을까?
당시에는 지금보다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한 학급에 많은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내가 다닌 시골 국민학교도 한 학년에 반이 하나뿐이었고, 그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Q. 지금과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무엇일까?
내게는 역시 교실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숫자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풍경이지만,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지금 돌아보면 시대의 변화를 가장 실감하게 하는 모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