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추억의물건인 게시물 표시

타자기에서 컴퓨터 키보드로 넘어간 과정

이미지
요즘 글을 쓰다가 오타가 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할 것도 없이 백스페이스부터 누른다. 문장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째로 지워버리고, 앞뒤 순서를 바꾸는 것도 금방이다. 너무 당연해서 편리하다는 생각조차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종이에 글자를 직접 찍는 타자기가 있었다. 영화나 오래된 드라마에서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글자가 종이에 찍혀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김새만 보면 지금의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은 지금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갔다. 꾹꾹 눌러야 글자가 찍혔던 타자기 기계식 타자기는 자판을 누르면 안쪽의 장치가 움직이면서 잉크 리본을 거쳐 종이에 글자를 찍었다. 요즘 키보드처럼 살짝 눌러도 입력되는 방식이 아니다. 기종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제법 힘을 줘서 자판을 눌러야 했고, 오래 사용하다 보면 손가락도 피곤했다. 그리고 타자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리다. 자판을 누를 때마다 탁탁 소리가 났고, 한 줄을 다 쓰고 다음 줄로 넘어갈 때도 특유의 기계음이 났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자기를 사용하던 사무실이라면 지금의 사무실과는 소리부터 꽤 달랐을 것이다. 오타가 나면 정말 난감했다 타자기를 쓰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오타였다. 컴퓨터라면 틀린 글자를 발견하는 순간 바로 지우면 그만이다. 타자기는 이미 종이에 글자가 찍혀버린 뒤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수정용품을 이용해 잘못 찍힌 부분을 고치기도 했지만, 깔끔한 문서가 필요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거의 다 작성한 문서에서 실수가 발견되면 다시 작성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요즘처럼 일단 생각나는 대로 쓰고 나중에 문장을 옮기거나 고치는 방법도 쉽지 않았다. 글자 하나를 입력할 때도 지금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타자를 잘 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었다 타자기는 있다고 해서 누구나 바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자판 위치부터 익혀야 했고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버스 토큰과 회수권은 어떻게 사용됐을까

이미지
 지금은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나 휴대전화를 단말기에 갖다 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지갑에 현금이 없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고, 환승할 때도 요금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려면 주머니부터 한번 확인하곤 했다. 버스 토큰이나 회수권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버스를 타고 학교나 직장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토큰과 회수권은 지금의 교통카드만큼이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주머니나 지갑 속에 몇 개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외출 준비 중 하나였다. 동전처럼 생겼지만 돈은 아니었던 버스 토큰 버스 토큰은 얼핏 보면 동전과 비슷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크기도 동전만 했지만 일반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버스를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전용 승차권이었다. 승객은 미리 토큰을 구입해 두었다가 버스에 타면서 요금 대신 냈다. 현금을 직접 주고받는 것보다 빠르게 승객을 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승객이 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바로 지나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출근이나 등교 시간에 한꺼번에 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요금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토큰을 여러 개 사두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 익숙했던 버스 회수권 토큰과 함께 많이 사용된 것이 버스 회수권 이다. 회수권은 종이로 된 승차권으로, 여러 장을 한꺼번에 구입해 한 장씩 떼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매일 버스를 이용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친숙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수업이 끝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승차권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방이나 지갑 속에 회수권을 넣어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의 학생들이 교통카드 잔액을 확인한다면 당시에는 “회수권이 몇 장 남았지?” 하고 확인하는 셈이었다. 회수권 한 장도 아깝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작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회수권은 사실상 현금과 비...

필름카메라는 사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이미지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촬영한 장면을 곧바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지우고 다시 찍을 수도 있으며, 한 번의 외출에서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부담 없이 남길 수 있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이 지금과 달랐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촬영한 뒤에도 결과를 바로 볼 수 없었다. 필름 한 통을 다 사용한 다음 사진관에 맡겨 현상과 인화를 마쳐야 비로소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자식 이미지 센서가 없던 필름카메라는 눈앞의 장면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그 원리는 빛에 반응하는 필름의 성질과 카메라가 빛의 양을 조절하는 구조에 있었다.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 빛이 사진이 되었다 사진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기록한 결과다. 우리가 사람이나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주변의 빛이 물체에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필름카메라에서는 렌즈가 이 빛을 모아 카메라 안쪽으로 보낸다. 렌즈를 통과한 빛은 필름 표면에 도달하고, 필름에 발라진 감광 물질이 빛에 반응하면서 장면의 정보가 남는다. 카메라 내부는 평소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어둡게 막혀 있다. 촬영 버튼을 누르는 짧은 순간에만 셔터가 열리며 필름이 빛에 노출된다. 셔터가 다시 닫히면 한 장의 촬영이 끝난다. 눈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버튼을 한 번 누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렌즈와 조리개, 셔터, 필름이 함께 작동한 것이다. 필름 표면에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이 있었다 사진용 필름은 얇고 긴 플라스틱 재료 위에 빛에 반응하는 감광층을 입힌 구조였다. 감광층에는 빛을 받으면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은염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빛이 많이 닿은 부분과 적게 닿은 부분에는 서로 다른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 이 차이가 나중에 현상 과정을 거치면서 밝고 어두운 부분으로 나타났다. 촬영 직후의 필름을 눈으로 본다고 해서 완성된 사진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필름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잠상...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 대여점이 만든 주말 풍경

이미지
 휴대전화나 텔레비전으로 원하는 영화를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은 영화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갈 필요가 거의 없다. 보고 싶은 작품을 검색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집에서도 곧바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직접 찾아가 영화를 고르고, 비디오테이프를 빌린 뒤 정해진 날짜 안에 돌려줘야 했다. 당시 비디오 대여점은 단순히 테이프를 빌려주는 가게가 아니었다.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장소이자 가족의 주말 여가를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비디오테이프가 바꾼 가정의 영화 감상 비디오테이프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주로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관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상영되는 작품을 관람해야 했고, 텔레비전 영화 역시 방송국이 편성한 시간에 맞춰 봐야 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서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 이러한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오면 가족이 편한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중간에 잠시 멈출 수도 있었고,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다시 보는 것도 가능했다.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거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말이면 비디오 대여점을 찾았던 이유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이 되면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는 영화를 빌리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주말 동안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르거나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여러 편을 한꺼번에 빌리는 사람도 있었다. 가게 벽과 진열대에는 영화 제목과 배우의 얼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액션, 코미디, 공포, 멜로, 어린이 영화처럼 장르별로 구분해 놓은 곳도 많았다. 사람들은 케이스 앞면의 그림과 뒷면에 적힌 짧은 줄거리를 읽으며 영화를 골랐다. 지금처럼 예고편이나 다른 사람의 평가를 즉시 검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케...

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감았던 이유

이미지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테이프의 구멍에 연필이나 볼펜을 끼워 빙글빙글 돌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기계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연필이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등장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는 긴 자기테이프가 두 개의 릴에 감겨 있다. 음악을 재생하거나 녹음할 때 한쪽 릴에서 풀린 테이프가 반대편 릴로 이동한다.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기기 밖으로 풀려나왔을 때는 릴을 직접 돌려 다시 감아야 했다. 이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카세트의 톱니 모양 구멍에도 비교적 잘 맞았던 물건이 연필이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카세트테이프의 투명한 창을 보면 양쪽에 둥근 릴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릴에는 갈색 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얇은 자기테이프가 감겨 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기기 안의 회전축과 롤러가 테이프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테이프가 재생 헤드를 지나가는 동안 기록된 자기 신호가 전기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가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나 목소리로 들린다. 재생이 계속될수록 한쪽 릴의 테이프는 줄어들고 반대쪽 릴에는 점점 더 많이 감긴다. A면이 끝난 뒤 테이프를 뒤집어 B면을 재생하면 테이프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릴이 고르게 돌지 않거나 기기 안의 부품이 테이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밖으로 빠질 수 있었다. 연필을 사용한 가장 큰 이유 카세트테이프의 릴 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톱니가 있는 구멍이 있다. 재생기 안에서는 이 부분에 회전축이 끼워져 릴을 돌린다. 육각형이나 각이 진 연필은 이 구멍에 비스듬히 끼웠을 때 톱니에 걸리기 쉬웠다. 연필을 천천히 돌리면 릴도 함께 회전하면서 풀려 있던 자기테이프가 카세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볼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굵기와 모양이 맞지 않으면 헛돌았다. 반면 나무 연필은 모서리가 있고 손으로 잡기 편해 릴을 돌리는 데 비교적 유용했다. 특별한 수리도구가 없어도 책상 위의 연필 한 자루로...

삐삐는 어떻게 짧은 숫자로 사람을 연결했을까

이미지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밖에 있는 사람에게 바로 전화를 걸기가 어려웠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을 나가면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편함을 줄여준 기기가 바로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입니다. 작은 기계 화면에 숫자만 표시됐지만, 당시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습니다. 삐삐는 어떤 기기였을까 삐삐는 호출 신호를 받으면 소리나 진동으로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작은 기기였습니다. 바지 허리띠나 가방에 끼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호출이 오면 기기에서 ‘삐삐’ 소리가 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삐삐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초기의 삐삐는 상대방이 남긴 전화번호를 작은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직접 말할 수는 없었고, 삐삐를 받은 사람이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상대방의 삐삐를 어떻게 호출했을까 삐삐를 가진 사람에게 연락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무선호출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내 음성이 나오면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숫자로 입력했습니다. 잠시 뒤 삐삐 사용자의 기기에서 소리나 진동이 울리고 화면에 입력한 번호가 나타났습니다. 삐삐 사용자는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보고 가까운 공중전화나 집 전화, 사무실 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지금처럼 호출을 받는 즉시 통화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과 연락할 번호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삐삐와 공중전화는 함께 사용됐다 삐삐가 많이 사용되던 시절에는 공중전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밖에서 호출을 받은 사람은 화면에 나타난 전화번호를 기억하거나 메모한 뒤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습니다. 공중전화 앞에 사람이 많으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왔을 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화카드나 동전을 함께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삐삐만 있어서는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삐삐, 공중전화, 전화카드는 서로 따로 떨어진 물...

공중전화와 전화카드는 왜 거리에서 사라졌을까

이미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집 밖에서 급하게 전화를 걸어야 할 때 공중전화를 찾았습니다. 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 시장 입구, 학교 주변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다니거나 지갑 속에 전화카드 한 장을 가지고 있으면 밖에서도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하는 일이 오히려 낯설어졌지만, 한때는 많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통신수단이었습니다. 공중전화는 어떻게 사용했을까 과거의 공중전화는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은 다음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했습니다. 정해진 통화 시간이 지나면 동전을 더 넣어야 했고, 통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넣었던 동전이 반환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는 10원이나 100원짜리 동전을 미리 준비해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통화하는 사람 뒤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긴 통화를 하기 어려웠고, 꼭 필요한 말만 빠르게 전해야 했습니다.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했던 시대 공중전화를 사용하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에서 이름을 검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번호를 외우거나 작은 수첩에 적어 다녔습니다. 지갑 안쪽이나 전화카드 뒷면에 자주 쓰는 번호를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집에 전화를 걸어 “조금 늦는다”고 알리거나 약속 장소에서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연락하려면 기억해둔 전화번호가 필요했습니다. 번호를 모를 때는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이용해 관공서나 회사, 가게 등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동전 대신 등장한 전화카드 동전을 여러 개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을 줄여준 것이 전화카드였습니다. 공중전화기에 카드를 넣으면 카드에 남아 있는 금액만큼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통화를 마치면 남은 금액이 표시되어 다음에 다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카드는 지갑에 넣고 다니기 편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