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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왜 그랬을까? 3탄 — 학교에서 폐품을 모아 오라고 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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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이에게 “내일까지 집에 있는 폐품을 모아서 학교에 가져가라”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학교에서 왜 그런 걸 가져오라고 하느냐고 먼저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폐품을 모아 오라고 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하러 간 아이들이 왜 집집마다 빈 병을 찾아 학교에 가져갔을까 싶다. 폐품을 학교에 가져가던 아이들 그 시절 학교에서는 폐품을 모아 오라는 말을 종종 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모으는 물건은 달랐겠지만 빈 병이나 고철, 헌 종이처럼 다시 쓸 수 있거나 팔 수 있는 물건들이 폐품수집의 대상이 됐다. 1970년대에는 절약과 저축, 자원 활용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했다. 새마을운동 역시 농촌에서 시작해 도시와 직장, 학교 등으로 확대됐고 폐품수집도 당시 여러 생활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폐품을 모으는 일도 단순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아니라 아껴 쓰고 다시 활용하자는 시대 분위기와 맞닿아 있었다. 깡시골에는 가져갈 폐품도 많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곳은 아주 깊은 시골이었다. 폐품을 가져오라고 해도 사실 집에서 찾아낼 만한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신문을 보는 집도 흔하지 않았고, 종이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던 때였고, 지금처럼 화장지를 넉넉하게 사서 쓰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 생긴 종이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화장지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광고 전단지며 택배 상자며 종이가 넘쳐나지만, 그때는 종이 한 장도 그렇게 쓸모가 있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폐품을 모아 오라고 해도 헌 신문이나 종이를 한 아름씩 가져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폐품수집에서 가장 수월했던 것은 빈 병 이었다. 집 안팎을 둘러보다 빈 병이 있으면 챙겨두었다가 학교에 가져갔다. 요즘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은 버릴 것이 너무 많아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고민인데, 그때는 학교에서 폐품을 가져오...

종이 지도에서 내비게이션까지, 길 찾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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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처음 가는 곳이라도 주소나 상호만 알면 길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현재 위치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자동차를 타고 있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길을 안내해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자동차 안에는 전국도로지도 한 권쯤 들어 있었고, 처음 가는 장소라면 상대방이 그려준 약도를 챙겨가기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된 뒤에는 컴퓨터에서 지도를 찾아 종이에 출력해 들고 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 안에 길을 직접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이 등장했고, 이제는 그 역할까지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 종이 지도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사용되던 여러 단계 가 있었다. 자동차 안에 지도책 한 권을 넣어두던 시절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운전자를 위한 도로지도도 익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커다란 종이를 접어놓은 지도뿐 아니라 책처럼 페이지를 넘겨보는 전국도로지도와 지역별 도로안내 책자도 많이 사용됐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거나 처음 가는 지역으로 운전할 때 필요했기 때문에 자동차 수납공간이나 좌석 뒤편에 지도책을 넣어두는 경우도 많았다. 몇 년 동안 사용하다 보면 책 모서리가 닳고 자주 보는 페이지에는 접힌 흔적이 남기도 했다. 지금 자동차에서 지도책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자동차와 종이 지도가 꽤 오랫동안 함께 다녔던 셈이다. 처음 가는 장소에는 ‘약도’가 따라붙었다 종이 지도와 함께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이 약도 였다. 결혼식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 각종 행사 안내장에는 행사장을 찾아오는 길을 간단하게 그린 약도가 들어가곤 했다. 가게 명함이나 광고 전단에도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약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모든 도로를 자세히 그리는 대신 큰 사거리나 학교, 은행, 시장처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장소를 표시하고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길을 굵은 선으로 그려놓았다. 주소만 알려주는 것보...

공중전화에서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방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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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누군가에게 연락할 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누르거나 이름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집에 있든 밖에 있든 이동 중이든 크게 상관없다. 하지만 예전의 전화는 지금과 조금 다른 물건이었다. 전화는 사람에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장소에 놓여 있는 물건 에 가까웠다. 집에는 집 전화가 있었고, 회사에는 회사 전화가 있었다. 밖에서는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전화기의 모양이 달라진 것보다 더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연락이 장소를 찾아가는 일에서 사람을 찾아가는 일로 바뀐 것이다. 전화번호는 원래 사람보다 장소를 나타냈다 예전에는 한 집에 전화번호 하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 개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 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친구가 바로 받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여보세요?” 전혀 다른 가족이 전화를 받으면 “○○이 있나요?” 하고 바꿔달라고 해야 했다. 친구가 없으면 가족에게 전화가 왔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회사도 비슷했다. 대표번호로 전화한 뒤 원하는 사람이나 부서를 찾아 연결받는 방식이 흔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락 방법이었다. 전화번호 역시 개인의 번호라기보다 집과 회사 같은 장소의 번호 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연락할 방법이 크게 줄었다 집에 있을 때는 전화가 있었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밖으로 나간 사람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누군가 외출하면 어디로 갔는지, 몇 시쯤 돌아오는지를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경우가 많았다. 예정보다 늦어지더라도 집에서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반대로 밖에 있는 사람도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바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외출에는 지금보다 훨씬 긴 ‘연락할 수 없는 시간’ 이 존재했다. 오늘날에는 휴대전...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생활용품이 다양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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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문구점이라고 하면 공책이나 연필, 볼펜 같은 학용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예전 동네 문방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른 풍경이 생각날 것이다. 문방구 안에는 학용품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건전지와 풀, 테이프 같은 물건부터 작은 장난감, 우산, 실내화, 양말, 머리핀처럼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건까지 함께 진열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게 규모는 크지 않았는데 물건 종류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왜 예전 문방구에서는 이렇게 많은 생활용품을 함께 팔았을까? 문방구는 학생만 이용하는 가게가 아니었다 문방구의 가장 중요한 손님은 물론 학생들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공책, 연필, 지우개, 자, 색종이 같은 학용품이 가득했다. 준비물을 깜빡한 학생들이 등교 전에 급하게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가에 있던 동네 문방구는 조금 달랐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와 동네 주민들도 자주 찾았다. 집에서 갑자기 필요한 작은 물건이 생겼을 때 멀리까지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가까운 가게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방구에서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자주 찾는 물건도 함께 판매하게 됐다. 지금처럼 대형마트가 가까운 곳에 많지 않았다 현재는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대형마트나 편의점, 생활용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집에서 받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소비 환경이 아니었다. 대형마트가 지금처럼 곳곳에 자리 잡기 전에는 생활에 필요한 작은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시장이나 상가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동네 곳곳에 있던 작은 가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문방구 역시 그중 하나였다. 공책을 사러 갔다가 건전지를 사고, 아이 준비물을 사러 갔다가 테이프나 작은 생활용품을 함께 사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소량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에 편리했다 생활하다 보면 거창한 장보기가 아니라 물건 하나만 급하게 필요한 순간이 있다. 테이프가 떨어지거나 건전지가 필요할 수도 있고, 아이가 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 시간을 신문에서 찾아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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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보고 싶은 방송이 있으면 휴대전화로 검색하면 된다. 방송 시간을 놓쳤더라도 다시보기로 볼 수 있고, 원하는 장면만 골라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예전에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먼저 몇 시에 방송하는지 알아두는 것 이 중요했다.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면 뉴스 기사보다 먼저 오늘의 TV 편성표를 찾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방송국별 프로그램 이름과 시간을 훑어보다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그 시간을 기억해두곤 했다. 신문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TV 편성표 예전 신문에는 방송국별 TV 프로그램과 방송 시간이 정리된 편성표가 실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어떤 프로그램이 방송되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TV 편성표 앱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몇 시에 시작하는지, 주말 영화는 무엇을 해주는지,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은 몇 시부터인지 신문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 먼저 신문을 보고는 “오늘 저녁에 영화 한다”거나 “드라마 오늘 하는 날이다”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지금처럼 방송 시작을 휴대전화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 사람이 기억해야 했다. 방송 시간에 맞춰 하루 일정을 맞추기도 했다 인기 있는 드라마나 특별한 방송이 있는 날에는 저녁 시간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저녁을 조금 일찍 먹거나 하던 일을 서둘러 끝내고 방송 시작 전에 TV 앞에 앉았다. 프로그램이 시작한 뒤에 집에 들어오면 앞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녹화할 수 있는 기기가 없는 집이라면 이미 지나간 장면을 다시 볼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빨리 와, 시작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곤 했다. 특히 마지막 회나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라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 신경을 썼다. 채널 선택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지금은 채널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볼지 고르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타자기에서 컴퓨터 키보드로 넘어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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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을 쓰다가 오타가 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할 것도 없이 백스페이스부터 누른다. 문장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째로 지워버리고, 앞뒤 순서를 바꾸는 것도 금방이다. 너무 당연해서 편리하다는 생각조차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종이에 글자를 직접 찍는 타자기가 있었다. 영화나 오래된 드라마에서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글자가 종이에 찍혀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김새만 보면 지금의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은 지금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갔다. 꾹꾹 눌러야 글자가 찍혔던 타자기 기계식 타자기는 자판을 누르면 안쪽의 장치가 움직이면서 잉크 리본을 거쳐 종이에 글자를 찍었다. 요즘 키보드처럼 살짝 눌러도 입력되는 방식이 아니다. 기종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제법 힘을 줘서 자판을 눌러야 했고, 오래 사용하다 보면 손가락도 피곤했다. 그리고 타자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리다. 자판을 누를 때마다 탁탁 소리가 났고, 한 줄을 다 쓰고 다음 줄로 넘어갈 때도 특유의 기계음이 났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자기를 사용하던 사무실이라면 지금의 사무실과는 소리부터 꽤 달랐을 것이다. 오타가 나면 정말 난감했다 타자기를 쓰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오타였다. 컴퓨터라면 틀린 글자를 발견하는 순간 바로 지우면 그만이다. 타자기는 이미 종이에 글자가 찍혀버린 뒤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수정용품을 이용해 잘못 찍힌 부분을 고치기도 했지만, 깔끔한 문서가 필요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거의 다 작성한 문서에서 실수가 발견되면 다시 작성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요즘처럼 일단 생각나는 대로 쓰고 나중에 문장을 옮기거나 고치는 방법도 쉽지 않았다. 글자 하나를 입력할 때도 지금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타자를 잘 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었다 타자기는 있다고 해서 누구나 바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자판 위치부터 익혀야 했고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버스 토큰과 회수권은 어떻게 사용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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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나 휴대전화를 단말기에 갖다 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지갑에 현금이 없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고, 환승할 때도 요금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려면 주머니부터 한번 확인하곤 했다. 버스 토큰이나 회수권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버스를 타고 학교나 직장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토큰과 회수권은 지금의 교통카드만큼이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주머니나 지갑 속에 몇 개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외출 준비 중 하나였다. 동전처럼 생겼지만 돈은 아니었던 버스 토큰 버스 토큰은 얼핏 보면 동전과 비슷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크기도 동전만 했지만 일반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버스를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전용 승차권이었다. 승객은 미리 토큰을 구입해 두었다가 버스에 타면서 요금 대신 냈다. 현금을 직접 주고받는 것보다 빠르게 승객을 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승객이 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바로 지나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출근이나 등교 시간에 한꺼번에 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요금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토큰을 여러 개 사두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 익숙했던 버스 회수권 토큰과 함께 많이 사용된 것이 버스 회수권 이다. 회수권은 종이로 된 승차권으로, 여러 장을 한꺼번에 구입해 한 장씩 떼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매일 버스를 이용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친숙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수업이 끝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승차권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방이나 지갑 속에 회수권을 넣어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의 학생들이 교통카드 잔액을 확인한다면 당시에는 “회수권이 몇 장 남았지?” 하고 확인하는 셈이었다. 회수권 한 장도 아깝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작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회수권은 사실상 현금과 비...

종이 지도만으로 처음 가는 길을 찾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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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처음 가는 곳이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현재 위치부터 도착할 때까지 길을 안내해준다. 길을 잘못 들어도 금방 새로운 경로를 찾아준다. 하지만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 지도도 없던 시절에는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날 때면 두꺼운 전국도로지도를 펼쳤고, 낯선 동네를 찾아갈 때는 주소를 종이에 적어 들고 다녔다. 버스에서 내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으면 주변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묻기도 했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여행의 한 과정이었던 시절이다. 출발하기 전에 먼저 길부터 확인했다 처음 가는 곳에 약속이 있다면 무작정 집을 나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먼저 주소를 확인하고 어느 지역에 있는지 찾아봤다. 자동차로 이동한다면 전국도로지도나 지역별 지도를 펼쳐놓고 어느 도로를 이용할지 대략적인 경로를 정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다면 어느 고속도로를 이용할지, 어디에서 빠져나와야 하는지, 목적지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미리 살펴보는 식이었다. 지도에서 길을 찾은 다음에는 중요한 지명을 기억하거나 종이에 적어두기도 했다. ○○고속도로 → ○○IC → 시청 방향 → ○○사거리 이렇게 주요 지점을 순서대로 적어놓으면 운전하면서 두꺼운 지도를 계속 펼치지 않아도 됐다. 지금의 내비게이션이 자동으로 해주는 일을 사람이 출발 전에 직접 준비했던 셈이다. 자동차 안에 전국도로지도가 하나씩 있던 이유 예전 자동차의 조수석 수납함이나 좌석 뒤쪽을 보면 접힌 지도책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는 집이라면 전국도로지도는 꽤 중요한 물건이었다. 지도에는 고속도로와 국도, 주요 도시와 지역 이름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목적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먼저 큰 도로를 따라 이동한 뒤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한 지역 지도를 확인했다. 문제는 운전하면서 지도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 여행을 떠나면 조수석에 앉은 ...

사진관에서 필름을 맡기고 기다려야 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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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진을 찍자마자 화면으로 결과를 확인한다. 눈을 감았으면 다시 찍고, 흔들렸으면 지우면 된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몇 장이고 찍는 것도 별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사진 한 장을 확인하는 일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사진관에 맡기고 나면 “언제 찾으러 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사진을 찍은 당일에는 잘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사진관에서 받아온 봉투를 열어봐야 그날 찍은 사진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막상 열어보면 눈을 감은 사람도 있었고, 사진이 흔들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화면 밖으로 반쯤 잘려 있기도 했다. 그래도 이미 찍고 인화한 사진이라 그런 모습까지 그대로 앨범에 들어갔다. 그 시절에는 왜 사진 한 장을 보기 위해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기다려야 했을까? 사진을 찍었다고 바로 사진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렌즈를 통과한 빛이 카메라 안에 들어 있는 필름에 닿는다. 필름 표면에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이 발라져 있어서 촬영 순간의 빛을 기록한다. 하지만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낸다고 우리가 아는 사진이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촬영된 정보는 필름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 형태로 남아 있고, 이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별도의 과정이 필요했다. 바로 현상 이다. 그래서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을 찍는 것과 사진을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지금은 셔터를 누르고 1초도 지나지 않아 결과를 확인하지만, 당시에는 필름을 현상하기 전까지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카메라 뒷면을 함부로 열면 안 됐던 이유 필름카메라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뒤 뚜껑 열면 안 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필름은 빛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촬영 도중 카메라 뒷면을 열어 필름이 빛에 노출되면 이미 찍어놓은 사진이 손상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통을 다 찍은 뒤 필름을 다시 필름통 안으로 감아 넣고 나서야 카...

필름카메라는 사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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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촬영한 장면을 곧바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지우고 다시 찍을 수도 있으며, 한 번의 외출에서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부담 없이 남길 수 있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이 지금과 달랐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촬영한 뒤에도 결과를 바로 볼 수 없었다. 필름 한 통을 다 사용한 다음 사진관에 맡겨 현상과 인화를 마쳐야 비로소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자식 이미지 센서가 없던 필름카메라는 눈앞의 장면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그 원리는 빛에 반응하는 필름의 성질과 카메라가 빛의 양을 조절하는 구조에 있었다.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 빛이 사진이 되었다 사진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기록한 결과다. 우리가 사람이나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주변의 빛이 물체에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필름카메라에서는 렌즈가 이 빛을 모아 카메라 안쪽으로 보낸다. 렌즈를 통과한 빛은 필름 표면에 도달하고, 필름에 발라진 감광 물질이 빛에 반응하면서 장면의 정보가 남는다. 카메라 내부는 평소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어둡게 막혀 있다. 촬영 버튼을 누르는 짧은 순간에만 셔터가 열리며 필름이 빛에 노출된다. 셔터가 다시 닫히면 한 장의 촬영이 끝난다. 눈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버튼을 한 번 누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렌즈와 조리개, 셔터, 필름이 함께 작동한 것이다. 필름 표면에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이 있었다 사진용 필름은 얇고 긴 플라스틱 재료 위에 빛에 반응하는 감광층을 입힌 구조였다. 감광층에는 빛을 받으면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은염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빛이 많이 닿은 부분과 적게 닿은 부분에는 서로 다른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 이 차이가 나중에 현상 과정을 거치면서 밝고 어두운 부분으로 나타났다. 촬영 직후의 필름을 눈으로 본다고 해서 완성된 사진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필름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잠상...

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감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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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테이프의 구멍에 연필이나 볼펜을 끼워 빙글빙글 돌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기계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연필이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등장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는 긴 자기테이프가 두 개의 릴에 감겨 있다. 음악을 재생하거나 녹음할 때 한쪽 릴에서 풀린 테이프가 반대편 릴로 이동한다.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기기 밖으로 풀려나왔을 때는 릴을 직접 돌려 다시 감아야 했다. 이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카세트의 톱니 모양 구멍에도 비교적 잘 맞았던 물건이 연필이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카세트테이프의 투명한 창을 보면 양쪽에 둥근 릴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릴에는 갈색 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얇은 자기테이프가 감겨 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기기 안의 회전축과 롤러가 테이프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테이프가 재생 헤드를 지나가는 동안 기록된 자기 신호가 전기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가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나 목소리로 들린다. 재생이 계속될수록 한쪽 릴의 테이프는 줄어들고 반대쪽 릴에는 점점 더 많이 감긴다. A면이 끝난 뒤 테이프를 뒤집어 B면을 재생하면 테이프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릴이 고르게 돌지 않거나 기기 안의 부품이 테이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밖으로 빠질 수 있었다. 연필을 사용한 가장 큰 이유 카세트테이프의 릴 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톱니가 있는 구멍이 있다. 재생기 안에서는 이 부분에 회전축이 끼워져 릴을 돌린다. 육각형이나 각이 진 연필은 이 구멍에 비스듬히 끼웠을 때 톱니에 걸리기 쉬웠다. 연필을 천천히 돌리면 릴도 함께 회전하면서 풀려 있던 자기테이프가 카세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볼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굵기와 모양이 맞지 않으면 헛돌았다. 반면 나무 연필은 모서리가 있고 손으로 잡기 편해 릴을 돌리는 데 비교적 유용했다. 특별한 수리도구가 없어도 책상 위의 연필 한 자루로...

삐삐는 어떻게 짧은 숫자로 사람을 연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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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밖에 있는 사람에게 바로 전화를 걸기가 어려웠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을 나가면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편함을 줄여준 기기가 바로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입니다. 작은 기계 화면에 숫자만 표시됐지만, 당시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습니다. 삐삐는 어떤 기기였을까 삐삐는 호출 신호를 받으면 소리나 진동으로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작은 기기였습니다. 바지 허리띠나 가방에 끼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호출이 오면 기기에서 ‘삐삐’ 소리가 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삐삐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초기의 삐삐는 상대방이 남긴 전화번호를 작은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직접 말할 수는 없었고, 삐삐를 받은 사람이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상대방의 삐삐를 어떻게 호출했을까 삐삐를 가진 사람에게 연락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무선호출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내 음성이 나오면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숫자로 입력했습니다. 잠시 뒤 삐삐 사용자의 기기에서 소리나 진동이 울리고 화면에 입력한 번호가 나타났습니다. 삐삐 사용자는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보고 가까운 공중전화나 집 전화, 사무실 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지금처럼 호출을 받는 즉시 통화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과 연락할 번호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삐삐와 공중전화는 함께 사용됐다 삐삐가 많이 사용되던 시절에는 공중전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밖에서 호출을 받은 사람은 화면에 나타난 전화번호를 기억하거나 메모한 뒤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습니다. 공중전화 앞에 사람이 많으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왔을 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화카드나 동전을 함께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삐삐만 있어서는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삐삐, 공중전화, 전화카드는 서로 따로 떨어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