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그랬을까? 1탄 — 국민학교에서 건빵을 급식으로 주던 시절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 급식이라고 하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부터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은 전혀 다릅니다.
내가 다닌 상옥국민학교에서는 급식으로 건빵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합니다.
군대 간식처럼 생각하기 쉬운 건빵을 왜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으로 나눠줬을까요?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학교 급식
오늘날 학교급식은 학교에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전쟁 이후에는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전국의 결식아동은 61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953년에는 유니세프와 미국경제협조처 등의 지원으로 들어온 탈지분유가 어린이들에게 제공됐고, 이후에도 외국의 지원을 받은 곡물이 학교급식에 사용됐습니다. 1963년에는 원조받은 곡물로 만든 식빵을 초등학생들에게 배급했고, 1966년에는 급식 대상이 280만 명까지 확대됐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학교급식은 지금처럼 메뉴를 갖춘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부족한 영양과 끼니를 보충하는 성격이 강했던 것입니다.
나는 왜 건빵을 받았을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는 급식으로 건빵을 나눠줬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지역의 학교에서 무엇을 급식으로 받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건빵을 주니 그저 국민학교 급식은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 매스컴을 통해 당시 서울을 비롯한 큰 도시의 학교에서는 빵을 급식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광주에서도 빵 급식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때 처음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같은 시절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왜 어떤 학교에서는 빵을 먹고, 우리 학교에서는 건빵을 먹었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일반 빵은 오래 보관하기 어렵고 운송 시간이 길어지면 변질될 가능성이 있지만, 건빵은 수분이 적어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하고 운반하기에 유리했습니다.
왜 그 시절에는 빵과 분유가 많았을까
여기에는 당시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도 관련이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쌀이 충분하지 않았고 정부는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보리 등을 섞어 먹는 혼식과 밀가루 음식을 먹는 분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 잡곡이 제대로 섞여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음식점에서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가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검사했다는 사실도 낯설지만, 당시에는 식량 부족이 개인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급식 한 끼에도 그 시대가 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받았던 건빵은 그때는 특별한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나눠주니까 받아먹었던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 당시 학교급식의 역사를 찾아보니 그 작은 급식 하나에도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식량 사정, 해외 원조, 혼분식 장려 같은 시대의 모습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의 학교급식과 비교하면 더욱 놀랍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해 여러 반찬과 식단을 구성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라도 먹이고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시절이었습니다. 학교급식은 이후 제도화되고 확대되어 1998년에는 전국 초등학교로 확대됐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에는 당연해서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건빵을 받아먹었던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때는 그냥 건빵 한 봉지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당시 우리나라의 생활 형편과 학교의 모습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면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다음에는 또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그 시절의 생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