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감았던 이유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테이프의 구멍에 연필이나 볼펜을 끼워 빙글빙글 돌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기계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연필이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등장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는 긴 자기테이프가 두 개의 릴에 감겨 있다. 음악을 재생하거나 녹음할 때 한쪽 릴에서 풀린 테이프가 반대편 릴로 이동한다.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기기 밖으로 풀려나왔을 때는 릴을 직접 돌려 다시 감아야 했다.
이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카세트의 톱니 모양 구멍에도 비교적 잘 맞았던 물건이 연필이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카세트테이프의 투명한 창을 보면 양쪽에 둥근 릴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릴에는 갈색 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얇은 자기테이프가 감겨 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기기 안의 회전축과 롤러가 테이프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테이프가 재생 헤드를 지나가는 동안 기록된 자기 신호가 전기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가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나 목소리로 들린다.
재생이 계속될수록 한쪽 릴의 테이프는 줄어들고 반대쪽 릴에는 점점 더 많이 감긴다. A면이 끝난 뒤 테이프를 뒤집어 B면을 재생하면 테이프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릴이 고르게 돌지 않거나 기기 안의 부품이 테이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테이프가 느슨해지거나 밖으로 빠질 수 있었다.
연필을 사용한 가장 큰 이유
카세트테이프의 릴 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톱니가 있는 구멍이 있다. 재생기 안에서는 이 부분에 회전축이 끼워져 릴을 돌린다.
육각형이나 각이 진 연필은 이 구멍에 비스듬히 끼웠을 때 톱니에 걸리기 쉬웠다. 연필을 천천히 돌리면 릴도 함께 회전하면서 풀려 있던 자기테이프가 카세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볼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굵기와 모양이 맞지 않으면 헛돌았다. 반면 나무 연필은 모서리가 있고 손으로 잡기 편해 릴을 돌리는 데 비교적 유용했다.
특별한 수리도구가 없어도 책상 위의 연필 한 자루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널리 사용됐다.
느슨해진 테이프를 다시 팽팽하게 만들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오래 사용하면 내부의 자기테이프가 느슨해질 때가 있었다. 테이프가 팽팽하지 않은 상태로 재생기에 들어가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거나 기기 내부에 엉킬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때 연필을 한쪽 릴에 끼운 뒤 테이프가 감기는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반대쪽 릴과 테이프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느슨한 부분이 사라질 때까지만 감아주면 됐다.
지나치게 세게 감으면 테이프가 팽팽해져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고 돌리면 오히려 테이프가 더 풀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빠르게 돌리기보다 투명한 창으로 내부 상태를 살피며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기기 밖으로 빠져나온 테이프도 감을 수 있었다
재생기에서 카세트를 꺼냈는데 자기테이프가 길게 늘어져 나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흔히 ‘테이프를 씹었다’고 표현했던 상황이다.
기기 안의 롤러나 회전 부품에 자기테이프가 붙거나 감기면서 발생했다. 오래된 테이프가 약해졌거나 카세트 플레이어 내부에 먼지가 쌓였을 때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빠져나온 테이프는 손으로 잡아당기지 않고 기기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해야 했다. 구겨진 부분을 가능한 한 평평하게 편 다음 연필로 릴을 천천히 돌려 카세트 안으로 다시 넣었다.
한번 심하게 구겨진 부분은 원래 상태로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 부분을 재생할 때 소리가 흔들리거나 끊기고 잡음이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중요한 노래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라면 버리지 않고 최대한 복구해서 다시 들었다.
원하는 부분을 찾을 때도 사용했다
연필은 느슨한 테이프를 정리할 때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테이프를 빨리감기하거나 되감으면서 건전지와 전기를 아끼려는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하는 노래를 찾기 위해 기계의 빨리감기 버튼을 계속 누르면 건전지가 빨리 닳았다.
이때 카세트를 꺼내 연필로 릴을 직접 돌리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테이프의 위치를 옮길 수 있었다. 정확히 원하는 노래의 시작점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대략적인 위치까지 이동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테이프가 한쪽으로 거의 다 감겼을 때 반대편으로 되돌리는 용도로 연필을 사용하기도 했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건전지가 귀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무리하게 돌리면 테이프가 손상될 수 있었다
연필을 이용한 방법은 편리했지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었다. 테이프가 어느 방향으로 감기는지 확인하지 않고 힘을 주면 내부에서 자기테이프가 꼬일 수 있었다.
릴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데도 억지로 돌리면 테이프가 늘어나거나 끊어질 위험이 있었다. 자기테이프 표면을 손으로 많이 만지면 오염이나 손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카세트테이프가 자주 엉킨다면 테이프 자체보다 재생기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었다. 내부의 고무벨트나 롤러가 낡았거나 먼지가 쌓이면 다른 테이프도 반복해서 엉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필은 간단한 응급조치에는 유용했지만, 심하게 손상된 테이프나 고장 난 기계를 완전히 수리하는 도구는 아니었다.
연필 한 자루에 담긴 아날로그 시대의 기억
카세트테이프와 연필의 조합은 당시의 생활방식을 잘 보여준다. 물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고 바로 버리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다시 사용할 방법을 찾았다.
늘어진 테이프를 직접 감고, 구겨진 부분을 펴고, 끊어진 부분을 이어가며 하나의 테이프를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 안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가족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면 테이프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었다.
오늘날의 디지털 음악에서는 파일이 재생목록 안에서 즉시 이동하고, 원하는 부분도 화면을 눌러 바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연필로 테이프를 감던 행동은 불편했던 옛날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은 고장을 직접 해결하고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의 만족감은 디지털 기기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시대만의 기억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카세트테이프 다음으로 많은 가정에서 사용했던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 대여점이 주말의 여가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