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그랬을까? 6탄 — 난로 위 도시락과 동상, 그 시절 겨울 교실
요즘 학교 교실은 겨울이 되어도 난방이 잘된다. 아이들은 두꺼운 외투를 벗고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이면 따뜻한 급식을 먹는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겨울 교실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교실에는 난로가 있었지만 난로 하나가 넓은 교실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더구나 우리 반에는 학생이 70명 가까이 있었다.
겨울이면 난로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였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난로 위에는 도시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 겨울 교실을 생각하면 나는 따뜻한 난로보다 먼저 난로 위에 쌓여 있던 도시락과 차갑게 식은 밥, 그리고 겨울마다 동상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생은 70명, 난로는 하나였다
우리 반에는 학생이 70명 가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교실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함께 공부했을까 싶다.
겨울에는 교실에 난로를 피웠지만 난로 가까운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의 온도 차이도 컸다. 난로 가까이에 있으면 따뜻했지만 조금만 멀어지면 추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 난로는 또 다른 역할을 했다.
바로 도시락을 데우는 일이었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쌓아 데워 먹던 아이들
그 시절에는 학교 급식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겨울이면 아침에 따뜻한 밥을 도시락에 담아 와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래서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워 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반 학생이 70명 가까이 되는데 그 많은 도시락을 난로 하나에 모두 올려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난로 앞쪽에 있는 아이들이 주로 도시락을 올려놓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그냥 먹었다.
나도 겨울에 찬밥을 먹었던 기억이 많다.
지금은 추운 날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때는 겨울에 찬 도시락을 먹는 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한 반에 한두 명뿐이었던 보온도시락
그래도 한 반에 한두 명 정도는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나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형편이 좀 괜찮은 집 아이들이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그 시절 보온도시락의 성능이 지금처럼 좋았던 것도 아니다.
아침에 따뜻한 밥을 넣어 와도 점심시간에 열어보면 따뜻하다기보다는 그저 미지근한 정도였다.
그런데도 겨울에 차갑게 식은 밥을 먹던 아이들 눈에는 그 미지근한 밥조차 부러워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도시락 하나에서도 집집마다 형편의 차이가 보였던 시절이었다.
겨울에도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겨울 교실을 생각하면 도시락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겨울에도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고무신은 비나 흙에는 강했지만 겨울 추위를 막아줄 만한 신발은 아니었다. 추운 날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가다 보면 발끝부터 시려왔다.
나는 겨울만 되면 손발에 동상이 걸렸다. 그때는 그것도 겨울이면 으레 겪는 일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털신을 신었던 기억도 난다. 털신을 처음 신었을 때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무신을 신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발을 감싸주는 털이 있으니 훨씬 따뜻했다.
지금은 겨울이면 방한화며 털부츠며 따뜻한 신발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에는 고무신을 신고 겨울을 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겨울마다 동상에 걸렸던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왜 콩주머니에 발을 넣으라고 했을까
동상에 걸려 발이 시리고 불편하면 엄마는 나에게 콩주머니에 발을 넣으라고 했다.
마른 콩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콩을 따로 뜨겁게 데웠던 기억은 없는데 신기하게도 콩주머니가 차갑지는 않았다.
나는 왜 하필 콩 속에 발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콩 사이에 발을 푹 넣고 있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는 그 방법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그리고 왜 하필 콩이었을까?
예전에는 동상에 걸린 손이나 발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마른 콩을 이용하는 민간요법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엄마도 어른들에게서 그렇게 배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니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또 그다음 세대로 전해지던 생활의 지혜와 민간요법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추운 겨울을 당연하게 견뎠을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70명 가까운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공부하고, 난로 하나로 겨울을 났다.
몇몇 아이들은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 데워 먹었고, 대부분은 차갑게 식은 밥을 먹었다.
보온도시락을 가진 아이도 있었지만 점심시간이면 밥은 그저 미지근한 정도였다.
겨울마다 동상으로 고생하면서도 학교에 다녔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마련해준 콩주머니에 발을 넣었다.
그때는 그것이 불편하다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살았고, 나 역시 그것이 겨울이면 당연히 겪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겨울 교실과 비교해보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따뜻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따뜻한 급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의 겨울 풍경이 생각난다.
난로 위에 올라가 있던 도시락들, 차가운 밥을 먹던 아이들, 그리고 동상 걸린 발을 콩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때는 왜 그랬을까?
지금은 불편했던 기억조차도 어느새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풍경이 되어버렸다.
FAQ
Q. 옛날 학교에서는 왜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았을까?
학교 급식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겨울에는 점심때가 되면 밥이 차갑게 식었기 때문에 교실 난로를 이용해 도시락을 데워 먹기도 했다.
Q. 모든 학생이 난로에 도시락을 데울 수 있었을까?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한 반에 학생이 70명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난로 하나에 모든 도시락을 올릴 수 없었다. 난로 가까이에 있던 일부 아이들이 주로 데워 먹었고 대부분은 찬 도시락을 그대로 먹었다.
Q. 옛날 보온도시락은 점심까지 따뜻했을까?
내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도 한 반에 한두 명 정도 있었지만 점심시간이면 따뜻하다기보다 미지근한 정도였다.
Q. 옛날에는 동상에 콩주머니를 사용하기도 했을까?
예전에는 마른 콩 등을 이용해 동상 걸린 손발을 보온하는 민간요법이 전해지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겨울마다 동상으로 고생하면 엄마가 콩주머니 속에 발을 넣으라고 했다. 다만 이것은 당시의 생활 경험과 민간요법에 관한 이야기이며, 오늘날의 동상 치료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