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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왜 그랬을까? 2탄 —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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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가끔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학교가 멀면 버스를 타기도 하고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가 멀어도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학교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먼 길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학교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하나둘 집을 나섰습니다. 누가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학교 갈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먼저 나온 아이가 길을 걷다가 다른 아이를 만나고, 조금 더 가면 또 다른 아이가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동네 아이들이 함께 학교로 향했습니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걷다 보니 먼 학교까지 가는 길도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습니다. 책가방이 아니라 책보를 메고 다녔다 그 시절에는 지금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것 같은 책가방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책보에 책과 공책을 싸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책보를 메는 모습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달랐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책보를 어깨에 메고 다녔고, 여자아이들은 책보를 허리에 둘러 메고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책보 하나에도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 신작로가 아이들의 등굣길이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 지금처럼 잘 만들어진 보행로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온 신작로가 우리들의 등굣길이었습니다. 아침이면 책보를 멘 아이들이 신작로를 따라 줄줄이 걸었습니다. 산을 넘기도 하고 물을 건너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고 하면 아주 먼 옛날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

그때는 왜 그랬을까? 1탄 — 국민학교에서 건빵을 급식으로 주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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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 급식이라고 하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부터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은 전혀 다릅니다. 내가 다닌 상옥국민학교에서는 급식으로 건빵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합니다. 군대 간식처럼 생각하기 쉬운 건빵을 왜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으로 나눠줬을까요?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학교 급식 오늘날 학교급식은 학교에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전쟁 이후에는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전국의 결식아동은 61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953년에는 유니세프와 미국경제협조처 등의 지원으로 들어온 탈지분유가 어린이들에게 제공됐고, 이후에도 외국의 지원을 받은 곡물이 학교급식에 사용됐습니다. 1963년에는 원조받은 곡물로 만든 식빵을 초등학생들에게 배급했고, 1966년에는 급식 대상이 280만 명까지 확대됐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학교급식은 지금처럼 메뉴를 갖춘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부족한 영양과 끼니를 보충하는 성격이 강했던 것 입니다. 나는 왜 건빵을 받았을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는 급식으로 건빵을 나눠줬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지역의 학교에서 무엇을 급식으로 받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건빵을 주니 그저 국민학교 급식은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 매스컴을 통해 당시 서울을 비롯한 큰 도시의 학교에서는 빵을 급식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광주에서도 빵 급식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때 처음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같은 시절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왜 어떤 학교에서는 빵을 먹고, 우리 학교에서는 건빵을 먹었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일반 빵은 오래 보관하기 어렵고 운송 시간이 길어지면 변질될 가능성이 있지만, 건빵은 수분이 적어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하고 ...

은행에 가지 않고도 송금과 계좌이체를 할 수 있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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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야 할 때 스마트폰을 꺼내 계좌번호를 입력하면 몇 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자주 송금하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찾아 금액을 입력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일이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은행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직접 은행을 찾아가야 했고, 번호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린 뒤 창구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은행에 가지 않고도 돈을 보낼 수 있게 된 과정에는 은행 업무의 전산화와 통신망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돈을 보내려면 은행부터 찾아가야 했던 시절 은행 업무가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돈을 보내려면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은행에 가면 송금이나 입금을 위한 종이에 계좌번호와 금액 등을 직접 적었습니다. 작성한 용지와 돈을 창구 직원에게 건네면 직원이 내용을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은행이 붐비는 날에는 번호표를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월말처럼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은행 안에 긴 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은행 영업시간이었습니다. 은행 문이 닫히기 전에 일을 보러 가야 했기 때문에 직장인들에게 은행 업무는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은행 업무가 전산화되기 시작하다 은행들이 업무를 전산화하고 서로 연결된 금융망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은행 직원이 직접 확인하고 처리해야 했던 많은 업무를 컴퓨터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좌에 얼마가 있는지 확인하고, 한 계좌에서 금액을 차감하고 다른 계좌에 반영하는 과정도 전산망을 통해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돈을 보낼 때 실제 지폐가 은행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좌이체를 하면 금융시스템 안에서 각 계좌의 기록이 변경되고, 은행 간 거래도 정해진 금융망과 결제 절차를 통해 처리됩니다. 이런 금융 전산망이 갖춰지면서 송금은 점차 은행 창구에서만 할 수 있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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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열어보면 예전과 달리 현금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거나 편의점에서 작은 물건을 살 때도 카드를 사용하고, 요즘은 휴대전화만 있으면 결제할 수 있는 곳도 많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외출할 때 현금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현금이 꼭 필요했던 시절 과거에는 물건을 사고 대금을 지불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현금이었습니다. 월급을 현금 봉투로 받기도 했고, 필요한 돈을 찾으려면 은행 영업시간에 맞춰 직접 은행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현금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출하기 전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습관이었습니다. 멀리 여행을 가거나 큰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 많은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 위험도 지금보다 컸습니다. 처음부터 카드 사용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몇천 원짜리 물건 하나를 사면서 카드를 내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드가 처음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작은 식당이나 동네 가게에서 적은 금액을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면 괜히 사장님 눈치를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가 나간다며 툴툴거리는 사장님들도 있었고, 그래서 손님도 적은 금액은 현금으로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갑에 현금이 없어도 별다른 불편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지만, 이렇게 카드 한 장을 거리낌 없이 내밀 수 있는 생활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용카드가 현금을 대신하기 시작하다 현금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생활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신용카드입니다. 카드를 이용하면 물건을 구입할 때 당장 현금을 건네지 않아도 됩니다. 카드사가 결제 과정에 참여하고, 이용자는 정해...

음반을 사던 시대에서 스트리밍까지, 음악 감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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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듣고 싶은 노래가 생각나면 스마트폰에서 제목을 검색하면 됩니다. 노래 한 곡을 듣기 위해 음반을 사거나 음악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는 방법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면 음반 가게를 찾아갔고, 구입한 음반을 집으로 가져와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이후 CD와 MP3가 등장했고,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음악을 듣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사고, 보관하고, 찾아 듣는 방법 자체가 달라진 것입니다. 음악을 들으려면 먼저 음반을 사야 했던 시절 예전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원하는 시간에 들으려면 대부분 음반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새 앨범이 발매되면 음반 가게를 찾아가 직접 구입했고, 어떤 음반을 살지 진열대를 둘러보는 것부터 음악을 즐기는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음반 한 장을 구입하면 자연스럽게 수록곡 전체를 듣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타이틀곡 때문에 구입했지만 여러 번 듣다 보니 오히려 다른 수록곡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앨범 재킷이나 가사집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보고 가사를 읽으면서 노래를 듣는 것은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음악 감상 방법이었습니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직접 가지고 있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CD는 원하는 노래를 골라 듣기 쉽게 만들었다 CD가 널리 사용되면서 음악을 듣는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러 곡이 한 장의 음반에 들어 있다는 점은 이전과 비슷했지만 원하는 트랙을 선택하기가 훨씬 편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5번 곡을 듣고 싶다면 플레이어에서 해당 트랙을 선택하면 됐습니다. CD 플레이어뿐 아니라 휴대용 CD 플레이어와 자동차 오디오 등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을 들으려면 CD라는 물리적인 매체가 필요했습니다. 좋아하...

필름카메라에서 스마트폰까지, 사진 찍는 방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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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길을 걷다가 예쁜 풍경을 발견하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음식이 나오면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찍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진 한 장을 찍는 일도 지금처럼 가볍지 않았습니다. 필름 한 통에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수가 정해져 있었고, 찍은 사진이 잘 나왔는지는 현상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장면이나 여러 번 찍기보다는 정말 남기고 싶은 순간을 골라 셔터를 누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기계가 달라지면서 우리가 사진을 대하는 방법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한 장을 찍기 전에 먼저 생각하던 시절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의 수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24장이나 36장짜리 필름을 넣었다면 그 안에서 사진을 나누어 찍어야 했습니다. 여행을 갔다고 해서 마음껏 수백 장씩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전에 사람들의 행동도 지금과 달랐습니다.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서면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구도를 맞췄습니다. 눈을 감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이 앞을 가리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한 장을 찍었습니다. 잘 찍혔는지는 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셔터 한 번에 신중했습니다. 사진 한 장이 지금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행이 끝나도 사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바로 사진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 사진관에 맡기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며칠 뒤 봉투에 담긴 사진을 받아보는 순간에야 여행 중 찍었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흔들려 있었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찍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어설프게 나온 사진도 그대로 앨범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사진까지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다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사용되면서 사진을 ...

종이 지도에서 내비게이션까지, 길 찾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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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처음 가는 곳이라도 주소나 상호만 알면 길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현재 위치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자동차를 타고 있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길을 안내해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자동차 안에는 전국도로지도 한 권쯤 들어 있었고, 처음 가는 장소라면 상대방이 그려준 약도를 챙겨가기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된 뒤에는 컴퓨터에서 지도를 찾아 종이에 출력해 들고 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 안에 길을 직접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이 등장했고, 이제는 그 역할까지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 종이 지도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사용되던 여러 단계 가 있었다. 자동차 안에 지도책 한 권을 넣어두던 시절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운전자를 위한 도로지도도 익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커다란 종이를 접어놓은 지도뿐 아니라 책처럼 페이지를 넘겨보는 전국도로지도와 지역별 도로안내 책자도 많이 사용됐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거나 처음 가는 지역으로 운전할 때 필요했기 때문에 자동차 수납공간이나 좌석 뒤편에 지도책을 넣어두는 경우도 많았다. 몇 년 동안 사용하다 보면 책 모서리가 닳고 자주 보는 페이지에는 접힌 흔적이 남기도 했다. 지금 자동차에서 지도책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자동차와 종이 지도가 꽤 오랫동안 함께 다녔던 셈이다. 처음 가는 장소에는 ‘약도’가 따라붙었다 종이 지도와 함께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이 약도 였다. 결혼식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 각종 행사 안내장에는 행사장을 찾아오는 길을 간단하게 그린 약도가 들어가곤 했다. 가게 명함이나 광고 전단에도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약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모든 도로를 자세히 그리는 대신 큰 사거리나 학교, 은행, 시장처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장소를 표시하고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길을 굵은 선으로 그려놓았다. 주소만 알려주는 것보...